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문단 편집) === 32강 조별리그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전 - 1 : 3 패 === ||<-3> [[2006 FIFA 월드컵 독일|[[파일:2006 FIFA 월드컵 독일 로고.svg|width=80]]]][br]'''{{{#ffffff 2006 FIFA 월드컵 독일 F조 제1경기[br]2006년 6월 12일 15:00(UTC+1)}}}''' || ||<-3> '''{{{#000000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000000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독일|{{{#000000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000000 카이저슬라우테른}}}]])}}}''' || ||<-3> '''{{{#000 주심:}}}''' [[에삼 압델 파타|{{{#000 '''에삼 압델 파타'''}}}]] '''{{{#000 (이집트)}}}''' || || [[파일:일본 국기.svg|height=100px]] ||<|2> '''{{{+5 1 : 3}}}''' || [[파일:호주 국기.svg|height=100px]] || || '''{{{#ffffff 일본}}}''' || '''{{{#000200 호주}}}''' || || '''{{{#000 26′}}} [[나카무라 슌스케|{{{#000 나카무라 슌스케}}}]]''' || '''득점자''' || '''{{{#000 84′, 89'}}} [[팀 케이힐|{{{#000 팀 케이힐}}}]]'''[br]'''{{{#000 90+2′}}} [[존 알로이지|{{{#000 존 알로이지}}}]]''' || ||<-3> '''{{{#090 관중: 46,000명}}}''' || ||<-3> '''Man of the Match: [[팀 케이힐|{{{#000000 '''팀 케이힐'''}}}]] (호주)''' || 일본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사커루 호주였다. 호주는 1974 서독 월드컵 때 한 차례 월드컵 무대에 오른 후 번번이 대륙 플레이오프의 벽을 넘지 못해 30년이 넘도록 월드컵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야심차게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고, 대륙 플레이오프에서 남미 5위 우루과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더 놀라운 건 이때 히딩크는 호주 대표팀 감독과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루과이를 꺾고 본선 진출을 성공시킨 것이다.] 일본에서는 호주를 강력한 1승 제물로 취급했다. 물론 호주의 감독이 히딩크이고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를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팀 중에선 가장 전력이 처지는 팀이고 월드컵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편 히딩크는 이 경기를 앞두고 "한국은 내게 있어서 제 2의 조국이다. 제 2의 조국 한국을 위해 일본을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고 일본을 도발했다. 사실상 또 다른 의미의 [[한일전]]이 된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1승 제물이라고 여겼던 호주는 생각보다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던 중 전반 26분, 호주 진영 우측에서 고마노 유이치가 [[나카무라 슌스케]]에게 백패스를 건넸고 나카무라는 호주 진영 페널티 박스 우측 외곽에서 전방으로 볼을 띄웠다. 이 때 호주의 골키퍼 [[마크 슈워처]]가 앞으로 나와 캐칭을 시도했으나 [[다카하라 나오히로]]와 충돌하며 볼을 놓쳤고, 공은 그대로 땅에 맞은 뒤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명백핮 골키퍼 차징이었지만 주심은 호주 측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일본의 득점으로 인정했다. 기세등등해진 일본은 이후 추가골을 노렸지만 골 결정력 부족으로 추가골을 만들지는 못했고, 전반전은 1:0으로 일본이 앞선 채 끝났다. 호주 입장에서도 일본이 1승 제물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다음 경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후반전이 되자 히딩크는 먼저 후반 8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마크 브레시아노]]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팀 케이힐]]을 투입했고, 후반 16분에는 센터백 크레이그 무어를 빼고 공격수 조슈아 케네디를 투입했다. 마지막으로 후반 30분에는 루크 윌크셔를 빼고 공격수 [[존 알로이지]]를 투입해 공격수 숫자를 늘리면서 공세를 강화했다. 일본은 후반 30분을 넘어서자 서서히 잠그기에 돌입하며 1골 차 리드를 굳히려고 했다. 그러던 중 후반 39분, 호주의 공격 상황에서 [[루카스 닐]]이 일본 진영 좌측에서 길게 스로인을 했다. [[가와구치 요시카쓰]] 골키퍼가 앞으로 나와 펀칭했으나 볼이 호주 선수의 발 앞에 떨어졌고, 슛을 날렸으나 일본 선수의 몸에 맞고 튕겨나왔다. 이 볼을 가와구치가 미처 골문으로 복귀하지 못한 틈을 타 케이힐이 제차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후반 44분, 호주의 역습 찬스에서 케이힐이 페널티 박스 중앙 외곽에서 강력한 중거리 슛을 날려 역전골을 뽑아냈다. 90분이 다 지나가고 추가시간이 적용되던 중, 추가시간 2분에 호주의 역습 찬스에서 [[존 알로이시]]가 자신의 개인기로 일본 수비수를 간단히 제치고 중거리 슛을 날려 쐐기골을 넣었다. 불과 8분 사이에 3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결국 일본은 막판 8분을 버티지 못하고 3골을 뭉텅이로 얻어맞으며 1:3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당시 호주는 이 대회까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OFC]] 소속으로 치렀는데[* 물론 AFC 이적 자체는 2006년 1월에 했지만, 지역예선은 엄연히 OFC 소속으로 치렀기에 이 대회에서는 엄연히 오세아니아 소속으로 출전했다. 호주가 아시아 소속으로 출전한 건 다음 대회인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다.], 이 경기는 오세아니아 팀이 월드컵에서 거둔 첫 승리가 되었다. 아울러 일본은 월드컵에서 세계 최초로 오세아니아 팀에게 패배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 이후로 2019년 현재까지 오세아니아 팀이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둔 사례가 없으므로 결국 일본이 현재까지 오세아니아 팀에게 패배한 유일한 팀으로 남게 되고 말았다. 경기가 허무하게 역전패로 끝나자 일본은 문자 그대로 멸망했다. 가장 쉬운 상대인 호주에게 졌으니 이보다 더 강한 크로아티아나 브라질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쿠에 대한 여론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반면 이 경기에서 가장 기뻐한 것은 라이벌인 한국 축구팬들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앙숙이었고, 축구에서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기에 한일 간 성적 비교는 1998년 이후 매 대회마다 이어졌다. 그런데 일본이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자멸했으니 크게 기뻐한 것이다. 호주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마치 한국 선수들이 득점한 양 환호하며 기쁨을 누렸다.[* 게다가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을 도우러 참전한 점, [[베트남 전쟁]]에도 한국군과 같이 참전한 점 등의 역사적 배경도 함께 작용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히딩크에 대한 우호도는 더욱 높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